파리의 아름다움은 유명한 랜드마크 너머, 조용한 골목길에서 더욱 짙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파리의 대표적인 두 동네, 마레지구(Le Marais)와 몽마르트르(Montmartre)의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 속의 매력을 비교해 보았다.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두 지역은 분위기부터 감성, 즐길거리까지 확연히 달랐다. 마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던 그 차이의 지점들을 지금부터 풀어본다.
분위기: 고요한 마레 vs 낭만적 몽마르트르
마레지구는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단정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건물 외벽은 파리 특유의 아이보리빛 석조로 고풍스러움을 자아냈고, 거리에는 작은 갤러리와 부티크, 그리고 로컬 커피숍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걷는 내내 차분함이 깃든 동네였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골목을 따라 걷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몽마르트르는 발걸음을 들이자마자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동네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길목마다 아티스트의 낙서 같은 그래피티, 거리 공연, 그리고 분홍색 벽에 덩굴이 흐드러진 카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리마저 낭만적이다. 누군가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활기가 넘치는 이곳은 예술이 살아 있는 골목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마레가 조용한 속삭임이라면, 몽마르트르는 자유로운 노래 같았다. 두 곳 모두 매력적이지만, 여행자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의 결이 있었다.
즐길거리: 마레의 발견 vs 몽마르트르의 체험
마레지구는 ‘발견’의 공간이다. 지도 없이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흥미로운 장소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엔 벽돌 사이에 자리한 미니 갤러리를 찾았고, 또 어떤 날엔 빵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골목 끝 빵집에서 인생 크루아상을 만났다. 유명하지 않아도, 그 안에 정성과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들이 골목 사이사이 숨어 있다.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지역의 감각적인 의류숍이나 빈티지 마켓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반면 몽마르트르는 적극적인 ‘체험’의 동네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 서서 파리 전경을 내려다보는 순간, 여행의 실감을 가장 크게 느꼈다. 그 주변에서는 다양한 거리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작업도 많다. 나는 작은 캔버스에 초상화를 하나 남겼는데, 지금도 그 그림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공기와 햇살이 떠오른다.
또한 이곳에는 ‘달팽이 요리 전문점’이나 ‘프렌치 수플레 카페’처럼, 파리의 전통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많다. 맛과 향을 통한 체험이 여행에 깊이를 더해줬다. 몽마르트르는 체험을 중심으로 여행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장소였다.
감성의 차이: 클래식 마레 vs 드라마틱 몽마르트르
마레의 감성은 차분하고 고전적이다. 중세 시대부터 남아있는 거리 구조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 외벽들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거리의 색감도 부드럽고, 모든 게 은은하게 스며든다. 이곳에서는 혼자 걷는 시간이 즐겁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기에도 딱 좋다. 로맨틱한 분위기라기보다, 지적인 여유와 사색의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에 반해 몽마르트르의 감성은 화려하고 감정적이다.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언덕길과, 거기에 기대어 있는 알록달록한 카페와 벽화들은 마치 한 편의 뮤지컬 무대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의 사진은 모두 드라마틱하다. 구도, 색감, 배경까지 자연스럽게 로맨스를 담아낸다. 특히 노을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몽마르트르 골목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마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몽마르트르는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이 감성의 차이는 여행지로서의 성격을 크게 가르고, 여행 후의 여운 또한 전혀 다르게 남게 했다.
마레와 몽마르트르, 두 골목은 파리라는 도시의 서로 다른 얼굴이다. 마레는 고요하고 깊은 숨결을 간직한 공간으로, 파리의 지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반면 몽마르트르는 자유롭고 예술적인 생기를 품은 동네로, 파리의 낭만적인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쉽게 말하긴 어렵다. 그날의 기분,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는 이 두 곳을 모두 걸었기에, 파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목적지를 향한 빠른 이동이 아니라, 걷는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결이다. 파리의 골목들은 그렇게, 천천히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